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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길_박노해아시아사진전_세종문화회관B1_20140205-0303

혼자 새기기엔 아까운 전시, 박노해의 다른 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0834



처음 박노해를 알게 된 것은 희망버스에서 만난 한 지인이 내게 건넨 책 한 권 덕분이었다. <께로티카> 사진과 시, 에세이들이 수록된 책이었다. 그 책에 수록된 사진들도 사진이지만 가장 첫 페이지에 시작하는 글, '그대 그러니 사라지지 말아라' 시詩 한 편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IQ 두 자리 수의 아주 비상한 머리와 평생 시 한편 외워보지 않았던 나로서 그 긴 시를 암기하려고 했다는 것은 내가 정말 그 시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한 편에서 절망을 맛보고 있었던 나였기에 더욱 그 시의 에너지는 광명에 가까웠을 것이다. 글에서 느껴졌던 복받쳐 오르는 감정과 희망을 기억하고만 있다면 어떤 길이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힘이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은 긴 시 한 편을 욕심내어 소개한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트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그리고 다시 박노해를 만난 것은 세종문화회관에서의 <다른 길>이라는 전시를 통해서다(이 전시는 2014년 02월 05일부터 시작되어 03월 03일까지다). 푸른 녹음이 낀 듯 전시장의 벽면은 온통 깊은 녹색을 띠고 있었고 크고 작은 검은 프레임의 액자 안에 박노해의 낡은 필름카메라와 35mm렌즈 하 나로 찍은 흑백의 사진들이 조금은 빡빡하게 그렇지만 과함이 없이 걸려 있었다. 

사진 찍기를 즐겨하는 나로서는 흉내 내고 싶지만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그의 진실함이 느껴졌다. 사진장비의 발전은 아주 멀리서도 눈앞에서 찍은 듯 찍을 수 있고, 가시적으로 느낄 수 없는 색체까지 담아 낼 수 있지만 그에게 그런 최첨단 장비는 전혀 필요치 않았다. 단지 그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을 통해 느꼈던 그들만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기사 관련 사진
▲ <밀밭사이로 '걷는 독서' >를 감상하고 있는 수녀 당나귀를 이끌고 밀밭사이로 걸으며 책을 읽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 수녀.
ⓒ 이승훈

관련사진보기


그 '영혼'에 대한 메시지는 사진 오른 편에 달린 글들로부터, 흑백의 사진으로부터 그리고 공간에 퍼지는 음악으로부터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지속적인 울림으로 다가왔다.

울려 퍼지는 음악은 내 마음을 호수처럼 잔잔하게 만들었다. 길게 이어지는 사진과 글들은 잔잔해진 호수에 '돌'을 던진다. 호수에 날아온 '돌'은 항상 내재하지만 어느 순간 화석처럼 굳어져버린 것들을 끊임없이 깨트리고 있었다. 

인도 라자스탄에 어느 어린 소녀의 눈동자에서 웅장한 성전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여신의 본능을(사진 : 라자스탄의 소녀). 쓰나미로 폐허가 되었던 인도네시아 울렐르 마을 스물다섯 청년에게서 절망의 바닥에서 움트고 숲이 되어버린 희망을(사진 : 파도 속에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다), 수확을 마친 농부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간의 선물'을 주는 모습 속에서 진정 살아있음을(사진 : 아빠의 '시간 선물').

마치 그는 얼어붙은 차가운 얼음을 깨는 장인처럼 내 마음의 한 부근을 계속해서 깨트리고 있었다.

그는 정확히 내 심연의 '무엇'을 건드렸던 것일까. 전시의 중간 부근에 이르렀을 때, 그의 돌은 내 심연에 화석처럼 굳어져 있던 껍질에 금을 내었다.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글과 그가 살아온 흔적들은 그것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박노해의 시詩 :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무엇'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피해야겠다. 혹여나 아직 전시를 보지 못한 이들이 이 글을 읽고 깨우침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조금은 여백을 남겨둬야겠다. 전시를 보러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진귀한 '무엇'을 위해. 

전시는 2월 5일부터 시작하여 3월 3일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다. 대략 열흘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외 전시관련 자료는 홈페이지와 Facebook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를 보고 그들만의 진실한 촛불을 밝히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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