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박노해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의 작가와의 대화 내용을 정리해 올립니다.
2월 5일 전시 시작전에 미리 읽어보시면 마음에 더 와닿는 전시가 될 것 같습니다.
* 앞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전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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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며 가슴이 벅차서 울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저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했던 사진들도 있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교육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교육이라는 게, 학교라는 게 뭘까요?
저는 제도화된 학교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진이 찍고 싶으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모두 다 사진학과를 가야 됩니다.
요리를 하고 싶으면 요리를 직접하면 되는데 이탈리아 유학을 갔다와야 하고요. .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타고난 천재성을
시장, 대학, 국가의 삼중억압에 저당잡혀 사육당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아홉살 수잔나라는 소녀가 있는데요.
얘가 둘라를 하나 메고 양을 치고 있으면 그렇게 포스가 넘쳐요. (웃음)
'수잔나, 네 양이 몇마리냐' 물어보니까 몇 마리인지 모르겠다고 하는거에요.
얘가 학교를 안 다녀서 숫자를 모르는구나 했더니
'이 양은요, 지금 새끼를 배고 있고요,
얘는 하루에 젖을 양 두 마리를 짜야 하는 만큼 주고 있고요,
얘는 발가락을 다쳤어요' 하며
50마리를 모두 다 소개를 하는 겁니다.
저는 그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물의 질적 차이를 알지 못하는 숫자는 죄악입니다.
숫자가 삶을 뒤덮어버리는 것은 삶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의 잣대로 한줄로 줄세우는 사회는 이미 삶이 죽어버린 사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학교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체계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있죠.
봄이면 제일 가슴 아픈 풍경이 열여섯 코리아의 소녀들입니다.
가장 꽃같은 나이에 가장 음울한 얼굴을 하고
가장 싱싱한 나이에 가장 끔찍한 교복 패션으로 지냅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우리 부모세대가 진짜 나쁜 세대입니다.
전쟁과 식민지와 군사독재를 힘들게 벗어난 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해외여행 보내주고 좋은 대학 다니게 한다고,
우리가 글로벌 코리아로 세계 10위 반열에 올라갔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가난했어도, 평상에다 모닥불 피워놓고
할머니나 부모님의 오래된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가슴이 눈물로 범람하고 비옥한 옥토가 쌓였었는데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모두 과외에 맡기고 인터넷에 맡기고 텔레비전에 맡기고,
우리 언어는 전부 비즈니스 언어, 티비 예능프로 언어, 마케팅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인문학 책을 읽힌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듭니다.
제가 도시 빈민 아이들의 주말 학교 교장을 7년째 맡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자연을 품을 때 가슴 속에 시가 흐르고 살아나기 시작하기에,
그래서 저는 무조건 아이들에게 농사를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직접 지은 고구마를 길거리로 들고 나와서는
'군고구마 사세요,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나눔문화가 세운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교에 수익금도 전달하더라고요.
서로 편지도 주고받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변화합니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고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나왔고
이 아이들이 나눔문화 회원이 되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 이런 것이 인간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자기 삶의 이야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인데요, 아까 사인 받으면서 만져본 손이 참 따뜻하시더라고요.
따뜻한 손을 오랜만에 만져본 것 같습니다.
사진을 둘러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여러가지를 느꼈는데요.
저도 힘들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혁명가,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그 분들을 위해서 뭘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은 좋은 말이 난무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헛된 위안들이 도처에 깔려 있고, 거짓 희망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67억 인류 속에서 보면 대한민국에는 가난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
그런데 아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풍요는 우리 젊은이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너무 많은 지식으로 지혜를 말라붙게 만들었습니다.
'저주받은 자유의 시대'입니다.
지금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다는 젊은이들이
일다운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부모에게 빚지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하루 중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을 노동하는 일터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앞만 보고 높은 소득을 향해 질주하느라
내 영혼과 가슴이 일치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대신에 자기를 팔고 있죠.
이런 시대 속에서 정말 대안적인 혁명을 해보겠다고 몸부림쳐도
전 무력함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압니다.
다만 그 거대한 악의 시스템에서 나 자신이라도 온전히 지켜야겠다는 마음입니다.
흔들릴 때는, '난 안 팔아!’ 라고 말하면 됩니다.
거대한 악의 시스템이 짓눌러도 끝끝내 무릎 꿇지 않는 단 한 사람만 살아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진정한 나 자신을 잃지 말고,
내 영혼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꾸준히 밀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박노해 시인은 마지막으로 안데스 만년설산에 있는
께로족 마을에 가던 길의
이야기를 전하며
작가와의 대화를 마쳤습니다.
"께로족 마을을 가기위해 만년설산을 오를 때였습니다.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고산지대인데,
제 걸음으로 30시간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어둠이 우리를 뒤덮어도
희미한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삶은 기적입니다.
인간은 신비입니다.
희망은 불멸입니다.
단 한 사람만 살아있다면,
그대 희미한 불빛과 사랑과 나눔만 살아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