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다른길_박노해아시아사진전_세종문화회관B1_20140205-0303

출처 : 지금 여기 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age023/120208293213


한동안  박노해의 시 '부모로서 해 줄 단 세 가지'는 

내 책상 위 메모판에 걸려있었다.  

매일 읽어가며 아이에게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애쓰던 날들이 무수했다. 


내게 부모라는 이름은 그만큼 무거운 거였다.

지금도 후진 존재인 것은 여전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지도 못한 

부족한 부모이지만.


그의 시는 '노동의 새벽'처럼 

전투적이고 뜨겁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냉정해서  더욱 깊게 가슴으로 파고들었으며,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가 글이 아닌 사진으로 시를 썼다.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미술관에 도착한 시간은 두 시쯤. 

관람객이 많은 시간을 피하려고 서둘렀는데도 역시나 늦은 모양이었다.

이미 전시장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크고 작은 흑백의 사진은 짙은 초록의 벽에 걸려있었다.

사진전 팜플렛의 첫 장은 환한 연초록 빛깔이었다. 

사진전에 실린 작품과 해설을 모아놓은 책 역시 연초록.

사진들마다에는 하얀 종이에 적어 놓은 해설이 하나씩  붙어있었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한편의 시(詩)다.


전시장엔 세계 각지에서 작가가 직접 수집해 왔다는 

낯선 나라의 민속음악이 이상하리만치 익숙하게 흐르고 있었다.

요란한 컬러의 세상에 길들여진 눈은 

순정한 흑백의 사진 속으로 빨려들었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버마, 라오스, 티벳.....

그곳에서도 가장 깊은 곳,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분쟁과 빈곤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사진 속에는 쓰나미에 쓸려나간 폐허의 절망 위에 

홀로 나무를 심는 청년이 있고 <파도 속에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다>,

무장 경호원의 총구 앞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다 <쌀과 총>. 

함께 모여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기다리는 얼굴 가득

풍요로움이 차오르는 사람들<짜이가 끓는 시간>과, 

금과 은으로 된 발찌로 장식한 맨발로 

농사를 짓는 인디아 여성 농민들 <맨발의 입맞춤>, 

우기 때마다 휩쓸려 나가는 나무 다리를 다시 세우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노래하는 다리>. 


그리고 한동안 나를 묶어두고 그 앞을 떠날 수 없게 

만들었던 두 소년이 있다 <파슈툰 소년의 눈동자>. 

신성이 느껴지는 <칼데라의 아침>,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빠의 시간선물>, 

한 톨 씨앗에 담긴 진실의 당부 <그대, 씨앗만은 팔지 마라>. 

그 담백한 사진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조용하면서도 강렬했다. 피사체를 담아 셔터를 누를 때, 

작가가 지닌 마음의 결이 같이 찍힌 것이 아닐까. 

<주인을 위로하는 말>을 보며, 검은 등을 내보이고 앉은 여인에게 

다가가 가만히 안아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같이 울어도 좋으리라.

 

 

 

무기수로 감옥에서 살아나온 이후, 

박노해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다른 길>을 찾아 유랑의 길을 떠났다. 

그 길에서 그는 '눈에 띄지도 않고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는 이름 없는 이들의 삶'을 만났다.

사진전은 그 유랑의 기록인 셈이기도 하다. 


삶의 모든 것을 자본이 팔고 사는 시대, 

더 이상의 성장과 진보는 필요없다며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그에게 사람들이 이토록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 휘둘려 쭉정이만 남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정작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우린 다 눈치 채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시장을 천천히 빠져 나오는데, 

입구 하얀 벽면에 정갈하게 쓰여 있었던 문구가 다시 나를 잡아 끌었다.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박노해 <다른 길> 사진전 그 감동의 기록을 담은 책 『다른 길 열리다』 다른길 2014.09.15 12250
공지 [초대] 박노해 라오스 사진전 '라오스의 아침'展 | 2017.6.30~2018.2.28 다른길 2014.07.24 11950
공지 [전시 종료] <다른 길> 전시가 끝나 아쉬운 분들을 위해^^ 다른길 2014.03.04 13703
공지 [음악] 다른 길로 떠나는 여행, 그 속의 배경음악 소개 [3] 다른길 2014.02.18 14645
공지 [이야기가 있는 사진] 영상 모음 [4] 다른길 2014.01.23 20264
공지 [기획의 글_ 이기명] 아시아에서 길어 올린 동그란 희망 다른길 2014.01.16 14106
63 "다른길" [1] 雪竹(설죽) 2014.04.28 2625
62 [에세이 후기]다른 길 -박노해 file 다른길 2014.04.08 3382
61 [영상] 박노해 시인과의 대화 - 현실의 벽 앞에 정말, 다른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다른길 2014.03.14 2458
60 전시사진들 관련문의 [1] 봄봄 2014.03.07 2784
59 [영상] 박노해 시인과의 대화 - 무기력해 보이는 요즘 아이들, 힘들어하는 부모들 [3] 다른길 2014.03.05 2899
58 다른 길 사진전은 ㅇㅇㅇ 다 다른길 2014.03.04 2897
57 전시연장 부탁합니다~ [2] 마이드림 2014.03.03 2661
56 안녕하세요 박노해시인님 [1] M 2014.03.02 2668
55 『다른 길』박노해 시인 독자와의 대화 다른길 2014.02.25 2771
54 매주 박노해시인 글 메일링 신청을 했는데 안오네요 [1] 해와달 2014.02.28 3004
» [best후기]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박노해 사진전을 다녀와서 다른길 2014.02.28 3375
52 [박노해 시인과의 대화] Q : 시인은 왜 사시나요? file 다른길 2014.02.26 3438
51 [박노해 시인과의 대화] 시작하며 -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file 다른길 2014.02.26 3749
50 다음 사진전은..?? [1] 스박 2014.02.26 3078
49 [후기 모음] 전시만큼 가슴이 찡해지는 후기들 file 다른길 2014.02.25 3733
48 [best 후기] 박노해 사진전_ 다른길 :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콰르텟 2014.02.25 3567
47 외국인 방문시 [1] 친구 2014.02.25 3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