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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길_박노해아시아사진전_세종문화회관B1_20140205-0303



Q : 시인님은 왜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저는 모릅니다. 
우주가 왜 생겨났는지, 
제가 알 수 없는 바와 같이
제가 왜 사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경주 교도소가 산 중에 있습니다.
감옥에서 무기징역 사는데,  
산 중에서 굉장히 높은 옥담 너머가 보여요. 
빨간 노을 위로 기러기가 저쪽 옥담에서 
이쪽 옥담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나 나가면 어디 가지?' 생각하니 
갈 데가 없어요. 

그때까지 한 공간에서 가장 오래 산 곳이 
군대였거든요. 3년간 군생활 하면서 
네모 반듯한 방에서 처음 살아봤고 
처음 세끼를 다 먹어봤는데, 
그다음은 감옥이었죠. 

"아, 내가 머리 둘 곳이 없구나
이번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기징역 받고, 적어도 30년 후에는 
출소한다고 해도 가족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나 혼자 뿐이니,
몸이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달리고, 공부하고, 채식하고 
그렇게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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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먹고 사는 문제가 걱정이에요.
그때 제가 초기 불교를 공부하던 때인데, 
부처님이 위대하신 게^^ 동냥을 하셨어요. 
부처님이 하루 일곱 집을 동냥하는데, 
매끼 밥을 얻으러 다니면서 
민심, 민생을 살핀 거죠. 오늘은 누가 아픈지, 
사람들 고민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밥을 얻는 행위로 사람들 속의 
화두를 끌어안는 일을 했던 겁니다.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나, 산사의 스님들처럼 
세상과 닫아놓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와 관계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 고통, 슬픔을 자기 화두로 끌어안고 
세상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침묵의 불로 타오르는 사람들.
우리가 그 사람들 덕분에, 
그 거울 앞에 우리 마음을 비추며 사는 겁니다.

경제, 복지, 물질이라는 
삶의 수단만으로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전 국민의 소득이 10배가 올라간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우리 생의 근원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우리가 품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오래 쓸 수 있는 냄비하고 
수저 한 벌로 동네 식당 돌면, 못 먹고 살겠나
내가 글을 쓰고 돌아다닐 만큼 건강이 있고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찾았죠.

그때 제가 세운 서원誓願이 있습니다. 

내가 인간해방 지름길이라고 믿었던 
자본주의의 유일한 대항점이던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인류가 길을 잃었다. 
그 이후 급속히 변화하는 문명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대안 삶의 비전과 사상을 다시 찾자. 

내가 24일간 고문 당하고도 살아남은 것은
박종철이 물고문 당하다가 죽자
정권이 위협받은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그 정도로 안 당하고 살 수 있었던 것.
그렇게 받은 이번 생에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이 근원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물질은 이미 그렇게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옛날 사고 그대로 살고 있다. 
이걸 넘어서 인류가 뚫어낼 길을 찾자.

앞으로 감옥에서 그 작업 끝내고 죽으면 
웃으면서 죽을 수 있겠다.
그 생각을 하고 침묵 절필하며
지금까지 그 길을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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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일찍 7년 반 만에
나오게 된 뒤로도 스스로 침묵하며 
지구인류시대 곳곳을 직접 밟으면서 
세계의 문제 현장과 전통의 지혜와 비전을 
연구하고 책을 써온 지가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제가 이런 곳들을 찾아 
사진을 찍고 말씀을 받아 적는 것도
몇 년 후에는 누군가가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저는 내려놓고 다른 길을 가겠지요.

나만이 해야 한다는 건 없습니다.
허무만큼 큰 공간은 없습니다. 
허무를 배경으로 깔고 있지 않으면, 
열심이 지나치면 욕심이고 집착이 되는 것 같아요. 
미래 계획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소망은 있죠. 
이 책 끝낼 때까지 살아있다면 하는 정도^^

미래는 주술입니다.
우리 말에도 내일, 모래, 글피 그 이상은 없잖아요.
유치원생 때부터 많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잠자고, 꿈꾸지도 못합니다.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 느껴보지도 못하고, 
타고난 감각지를 모두 차단당해가면서, 
오로지 머리로만 승부하고 암기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20년 동안 
경주마처럼 달리는 생활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학교 졸업한 분들에게 
“학교 졸업하니까 탈옥한 것 같지 않아요?” 하면 
“앞이 막막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굴레를 넘어서 또 굴레, 
세끼 굶어 죽지 않는데도, 
우리는 끝없이 공포를 학습합니다. 
미래 대비를 하느라고 모든 것을 다 짜내고 있죠.
그나마 그 대비라는 것도 
결국 돈을 축적하는 것뿐입니다. 
이게 50, 70 죽을 때까지 갑니다.
우주에 한 번뿐인 하나뿐인 고유한 나, 
한 번뿐인 생을 직접 살지 못하고
미래라는 주술을 평생 대비만 하고 준비만 하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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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말 그대로 살 生, 목숨 命 
무조건 살라는 명령입니다. 
이 한 생에서 내가 좌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내 마음뿐 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건 오직 내 책임이거든요. 

'삶'과 '사랑'의 어원은 ‘사름’입니다. 
그 생명을 남김없이 불사르는 것
내일來日이 먼저 올지 
내생來生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태어났고 내 목숨 가져가는 것. 
이건 하늘의 영역, 어찌할 수 없음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오늘 하루를 마음껏 사랑하는 것. 
좋은 삶을 찾아 그 삶을 지금 바로 살아내는 것.
그렇게 살아야 늘 새로워지고,
내일 죽음이 닥쳐도 웃으며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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