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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길_박노해아시아사진전_세종문화회관B1_20140205-0303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신 '박노해 시인과의 대화'자리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금 이 길이 맞는 길인가"
'다른 삶'을 꿈꾸는 간절한 질문이 오갔던 그 현장.
박노해 시인의 이야기를 정리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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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시인이라 말에 민감한데요.
1998년 제가 막 석방되어 나왔을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인사였는데
몇 년 있더니 “부자 되세요”가 인사가 되고
이제는 “대박 나세요” 합니다.
한 사회 공동체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말이 무너집니다.
한 나라 공동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조차
‘통일은 대박’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느 한 사람의 대박은 많은 다수의 쪽박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대박도 싫고 쪽박도 싫고
다만 소박한 기쁨과 우애로운 삶을 원하지 않습니까?
 
다수결로 결정되면 좋은 진리가 선택되던가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문제는
이미 다수결 민주주의로는 해결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 국민들의 욕망을 반영한 주체가 
합법적 민주주의로 뽑혀서
4대강 대운하 공사가 발생하고, 
새만금 갯벌이 모조리 매립되는
이런 딜레마에 우리가 처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정점이다
진보는 끝났다
성장은 끝났다
미래는 끝났다 
이것이 우리가 딛고 선 엄정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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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 쓰인 <남김없이 피고지고>라는 사진 속
스무 살 엄마가 살고 있는 주변의 땅은 다 그분의 것입니다.
엄청 부자죠^^ 우리나라 같으면 골프장 해도 되겠네 하겠죠^^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은 3개월에 한번은 먼 길을 떠납니다.
3개월 이상 머물면 초지가 황폐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사용지’이지 ‘사유지’는 아닙니다.
그저 내가 정착해서 내 야크와 양을 먹이면 내 땅이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공용지입니다. 하늘이 주신 것이고,
아이들이 대를 이어 먹고 살아야 할 초원이기에
땅을 사유한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미세먼지’라는 말이 나온 지 얼마 정도 됐는지 아세요?
우리는 1-2년 지나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황사먼지’였어요. 그 황토는 좀 먹어도 됩니다.
그것이 2-3년 전부터 미세먼지로 바뀌었습니다.
 
왜 이렇게 황사가 심해졌는지 봤더니,
결국 우리가 죄인입니다. 
캐시미어 제품이 많이 팔리면서
중국, 몽골의 정부, 경영학 전공하신 분들이
'캐시미어를 집중 육성해서 소득을 높이자' 해서
캐시미어 염소를 장려해 엄청 늘려놨습니다.
그런데 양은 열 걸음 가고 한입 뜯어먹지만,
캐시미어 염소는 맛있는 풀을 보면 뿌리째 먹습니다.
결국 초지는 파괴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내몽골 황사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하는 중국.
미세먼지, 중금속 먼지가 불어닥치면
우리는 '에이, 중국 놈들' 하면서 뭐라고 하지요^^

그러나 5억 정도 되는 중국의 노동자들이
‘또 하나의 약속’ 영화로 알려진 삼성 반도체 희생자들처럼,
중금속과 화학물질을 쐬며 
우리나라 70년대 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의 젊은이들, 노동자들이 마셨을지 모를
중금속과 유해물질을 마시고 있습니다. 
우리 손의 스마트폰은 그렇게 나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쓰는 이 물질 하나하나에
약 50개국 노동이 섞여 있습니다.
70억 지구인류시대에 중국, 인도의 인구가 
한국의 최하위 소득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지구 3-4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국내의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고, 
노동인권도 지켜져야 하지만
이것이 지구시대의 인간 윤리 입니다.

'진보'적 사상의 근원이라고 하는
성서 다음으로 유명한 <공산당 선언>은
‘노동자에게는 국경이 없다. 
노동자 계급이 잃어버릴 것은 계급 지배 사슬이다. 
국경을 넘어 노동자여 한 형제로 연대하자.’
이렇게 끝납니다. 이런 기본 윤리가 사라지면 
오직 이권 투쟁만이 남을 뿐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내가 먹고 입고 쓴 대가인
중금속 미세먼지를 가득 호흡하고 오면서
‘황사 먼지’가 ‘미세 먼지’로 바뀐 지 몇 년 안 되는구나.
우리 아이들은 '황사 먼지'를 잊어버릴 것이고,
“대박 나세요”가 일상어가 되듯
우리는 물질은 넘치지만
인간성과 인간정신은 쇠약해진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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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전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그 분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2학년 아이들이
사인받으러 옵니다. "엄마 아빠 어디 가셨어?" 물으면
"저 혼자 왔습니다"라고 합니다.
검색하다 보니 이 사진전이 보여서
무조건 달려왔다는 거예요.
 
이 친구들이 정색을 하고 저에게 물어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에게 미래가 있습니까?
제가 지금 15살, 17살인데, 앞으로 50년 살 수 있습니까?”
정말 처절한 실존의 문제입니다.
이 어린 친구들이 '우리에게 희망이 남았는가?'라며
문명 전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50대, 양복 입고 넥타이 맨 직장인들도
많이 찾아오십니다. 명함 내놓으면 
어디 부장, 과장 이런 분들이죠.
이 분들이 문 닫을 때까지 조용히 한참을 보다 가십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편지를 써놓고 가시거든요.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정말 우리에게 희망이 남았는가”하는
온 삶의, 무게가 실려있는 삶의 고해들
절실한 삶의 질문들이 그 편지에 담겨 있습니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좋은 삶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이제는 젊은이들의 고민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작가와의 대화에서 드릴 답은 뻔합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다 아시는 얘기이거든요.
제가 가진 것은, 실패뿐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제가 설득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가족도, 자기의 습관 하나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는 40년 동안, 이 길을 걸으며
저의 무력함이 뭔지를 뼈저리게 아는 사람입니다.
 
다만 마치 병아리가 막 깨어나기 전에 어미 닭이
줄탁동기(啐啄同機)로 쪼아주는 인연처럼,
이곳을, 저를 만나서 각자 여러분들 안에 
살아있던 고귀한 것들이 불꽃의 만남으로 
번쩍하고 보이는 것. 그런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것뿐이니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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